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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아바의 생태적특징, 영양성분, 활용방식

화이트코지 2025. 4. 24. 00:00

구아바

구아바 생태적 특징

구아바나무는 그늘을 품지 않는다. 모든 잎이 해를 향해 다가가고, 모든 가지가 바람 속으로 길을 열어두었다. 마치 자신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대지에 내린 뿌리조차 얕고 가벼우며, 자갈과 붉은 흙을 지나며 조용히 확산된다. 나는 언젠가 늦여름의 끝, 구아바나무가 무성한 마당에서 며칠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마당은 낡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매일 오후 다섯 시가 지나면 비둘기 떼가 전깃줄 위에서 울음을 떨구었다. 나는 그 시간에만 구아바 잎이 조금씩 뒤척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얇고도 질긴 그 잎은 마치 납작하게 마른 손바닥 같았고, 빛이 들면 잎맥이 뚜렷이 드러나며, 식물의 피가 지나가는 경로를 조용히 보여주었다. 누군가 말했다, 구아바나무는 살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맞는 말이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적도의 태양 아래에서도, 깊은 물을 찾기 어려운 이국의 언덕에서도 구아바는 자란다. 작은 씨앗 하나가, 바람에 날리거나 새의 부리에 옮겨지거나, 흙 속에 떨어져 겨우 며칠이 지나면 싹을 틔우고, 단단한 껍질을 벌리고,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세상을 향해 자라난다. 그 성장의 속도는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느리지만, 그것이 품은 생명의 집요함은 종종 사람의 마음을 멈추게 한다. 한낮의 뜨거움 아래에서도 잎은 마르지 않으며, 잎사귀 하나하나는 두껍고 윤기 나는 겉면을 갖고 있어 수분을 오래 지킨다. 더운 나라의 식물이란 대체로 그렇듯, 구아바도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자란다. 그 열매는 처음엔 단단하고 쓰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말랑해지고, 무른 분홍빛을 품는다. 그 안에 든 씨는 수십, 수백 개이고, 사람의 이로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진실이었다. 어느 한 생명도, 단 하나의 씨앗만으로는 이 험한 대지 위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열매를 손에 쥐었을 때, 묘하게 익숙한 감정을 느꼈다. 단단한 껍질 너머로 전해지는 열기, 무게, 살 속에 박힌 씨들의 미세한 울퉁불퉁함. 그것은 오래전 누군가의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온기와도 비슷했고, 내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나 무엇인가를 움켜쥐려 했던 그 본능의 기억 같기도 했다. 구아바는 많은 것을 기억하는 식물이다. 그것은 단지 햇빛의 방향과 물의 냄새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처음 발을 디딘 존재들이 겪는 최초의 흔들림, 최초의 두려움, 그리고 최초의 단맛을 알고 있는 것이다. 새들이 먼저 그것을 발견하고, 개미떼가 줄지어 오르며, 사람들 또한 그것을 따서 과즙을 만들고, 잎을 끓여 차를 만든다. 그 속에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고, 비타민 C는 오렌지보다 몇 배나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런 영양소의 숫자보다도, 그것이 오래된 마당 어귀에서 햇살과 바람을 삼키며 서 있는 모습을 더 자주 떠올린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아니면 이미 모든 것을 견뎌낸 뒤인 듯이, 그 나무는 늘 조용했고, 묵묵했고, 아름다웠다. 살아 있다는 것이 늘 반짝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 나무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때로는 바람이 불어도 그저 잎을 떨며 서 있는 것, 빗물이 스며들면 뿌리로 천천히 흡수하는 것, 햇살이 작열하면 그것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견디는 것, 그런 시간이 쌓여서 하나의 생이 되며, 그 생은 열매를 맺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구아바를 바라보며, 살아 있다는 건 어떤 맛일까 하고 생각했다. 단맛만이 아닌, 떫고 시고 때로는 무르기도 한 그 감촉을. 그리고 아마, 그것이 바로 삶이라는 걸, 그 열매는, 그 잎은, 그 나무는 말없이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구아바의 영양성분

어느 날 오후였다. 볕이 무릎 위로 떨어졌고, 나는 구아바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것은 조용한 과일이었다. 진한 향기와 무른 살결을 가졌지만, 쉽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껍질을 벗겼고, 그 안에서 한 세계가 드러났다. 익숙하지 않은 초록빛. 속살은 분홍빛이거나 희거나, 때로는 그 중간 어디쯤에 머물렀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얼굴 같았다. 나는 그 과일에 입을 댔다. 달콤했지만, 단맛보다 더 진한 것이 입 안에 머물렀다. 그것은 침묵이었다. 구아바는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게 웅크렸다. 그 과일은 비타민 C를 품고 있었다. 오렌지보다 몇 배는 많은 양이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준비해 온 사람처럼. 거센 바람이나 맹렬한 햇빛이 쏟아지는 날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쌓아온, 조용하지만 단단한 방패 같은 것이 그 안에 있었다. 항산화물질인 라이코펜도, 폴리페놀도, 카로티노이드도 그와 함께 있었다. 어쩌면 그것들은 그 과일이 말 대신 삼킨 문장들일지도 모른다. 생명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기 위한 묵언의 문장들. 섬유질이 풍부하다는 것도, 그저 수치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 장 속을 조용히 쓰다듬고 지나가는 손길 같았다. 부드럽고, 조심스럽고, 따뜻했다. 구아바는 단백질도 소량 포함하고 있었고, 탄수화물도 과하지 않게 품고 있었다. 지방은 거의 없었다. 마치 자기 몸을 가볍게 하여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만든 새처럼. 나트륨도 적었다. 대신 칼륨이 많았다. 그 균형이 가져오는 안정을 나는 문득 느꼈다. 몸속의 전류가 고요히 흐르는 듯한 감각. 또, 구아바는 비타민 A도 품고 있었다. 피로에 시든 눈에, 오래도록 어둠 속에 앉아 있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드는 빛 같았다. 철분과 칼슘도 있었다. 그것은 피와 뼈를 만드는 기본의 힘이었고, 생명을 일으키는 가장 작은 기초였다. 구아바는 소리 내지 않고 그렇게 모든 것을 주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깨물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누군가에게 받은 것들이 떠올랐다. 말없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손을 내밀어 내게 건넨 것들. 그 과일 안에는 마그네슘과 인, 그리고 엽산도 있었다. 신경을 안정시키고, 세포가 나뉘는 순간들을 도우며, 태어나는 생명을 지켜내는 힘. 이토록 작고 무른 과일 하나에 어쩌면 세상의 모든 회복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걸 씹었다. 뿌듯하거나 대단한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고요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어떤 노래 같은 것이 났다. 구아바는 속삭이는 과일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속엔 한 생애가 들어 있었다. 햇빛 아래 천천히 익고, 바람 속에 흔들리며, 껍질을 스스로 물들여가던 시간. 그것은 그 어떤 설명보다 생생한 증거였다. 나는 그것을 다 씹고 나서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침묵 속에서, 내 몸 안에 천천히 스며드는 구아바의 문장들을 느끼며. 나는 그 과일이 품고 있는 영양소가 단지 숫자와 이름이 아닌 것처럼, 그것을 먹는다는 건 그 과일이 지나온 계절과 뿌리내린 땅, 그리고 쏟아진 비와 머문 햇빛을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구아바는 그렇게 내 안에 남았다. 빛처럼. 그림자처럼. 작은 생명 하나가 품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방식으로.

 

구아바의 활용방식

구아바는 삶에 조용히 스며드는 과일이다. 누군가는 그 향기만으로 여름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그 과육의 온기로 아침을 시작한다. 구아바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나는 그것이 너무 가볍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무게가 있었다. 삶의 무게와 비슷한 것이. 그것은 생으로 먹히기도 한다. 껍질을 벗기거나, 그대로 한 입에 베어 물면, 단맛과 약간의 떫은 맛, 그리고 특유의 향기가 조용히 혀 끝에서 퍼져나간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누군가처럼. 어떤 사람은 그것을 슬라이스해 얼음을 띄운 물에 넣고, 향이 우러나도록 기다린다. 구아바 물은 푸른 나뭇잎의 내음과 햇살이 스친 공기의 맛이 난다. 더운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구아바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왔다. 그것은 주스로 짜내지거나, 그대로 으깨져 퓌레로 쓰이거나, 아이스크림과 셔벗이 되기도 한다. 구아바 잼은 잔잔하게 끓는 냄비 안에서 농도를 더하고, 설탕과 레몬즙과 어울리며 천천히 빛을 만든다. 어떤 잼은 그리움 같은 맛이 난다. 식빵 위에 얇게 발라 먹을 때마다, 오래전의 시간이 혀끝에 돌아온다. 구아바는 디저트 속에서도 숨 쉰다. 구아바 파이, 구아바 케이크, 구아바를 넣은 푸딩. 어떤 조리사는 그 과일의 분홍빛을 살리기 위해 오븐 온도를 섬세하게 조절하고, 또 어떤 이는 그것의 향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비가열 레시피를 고집한다. 구아바는 그렇게 사람의 손을 거치며 달라진다. 그러나 그 본질은 어딘가 남아 있다. 뜨거운 기름에서 튀겨진 칩으로도 변한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소리 안에서, 우리는 열대의 강한 햇살을 떠올린다. 구아바는 차로도 마신다. 잎을 말려 우려낸 차는 쌉쌀하고도 부드럽다. 그것은 약초 같은 기능을 한다. 누군가는 구아바 잎을 삶아 상처를 씻었고, 누군가는 그것을 말려 베개 안에 넣었다. 구아바는 전통의 일부였다. 치유의 기억이기도 했다. 이 과일은 음료로도 널리 사용된다. 혼합 주스나 스무디, 칵테일의 재료가 된다. 술에 담긴 구아바의 향은 무르익은 기억처럼 올라온다. 단맛이 혀에 머물고, 우리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씹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구아바 사탕도 있다. 분홍빛 하드캔디 안에는, 구아바 향이 고요히 녹아 있다. 껍질이 제거된 구아바는 건조되어 과일칩이 되고, 이것은 도시락 속에, 등산 가방 안에, 또는 작은 사무실의 서랍 안에 들어간다. 구아바는 그 모든 장소에 적응하며 제 빛을 잃지 않는다. 분말 형태로도 존재한다. 건강보조식품이나 영양식, 쉐이크에 첨가되는 가루 속에도 구아바는 살아 있다. 그것은 바쁜 도시인들의 시간 속에 들어와 조용히 자리 잡는다. 또한 구아바는 산업 속에서도 변한다. 농축액으로 가공되어 대형 식품 공장으로 옮겨지고, 거기서 다시 가공되어 전 세계로 흘러간다. 캔에 담긴 구아바 주스, 플라스틱 병에 담긴 구아바 음료, 알루미늄 포장 속에 잠든 구아바 젤리. 어떤 것은 대형 마트의 선반 위에, 어떤 것은 가정의 냉장고 안에, 또 어떤 것은 비행기 기내식 메뉴 속에 존재한다. 그 모든 순간에서 구아바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한다. 더는 과일로 보이지 않는 형태일지라도, 그 안에는 여전히 잎과 열매와 햇빛의 시간이 담겨 있다. 구아바는 의학적으로도 사용된다. 항산화 성분과 항염 효과 덕분에, 관련 제품들이 약국과 병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것은 자연의 성분이 현대 의학과 만나는 지점이다. 잎 추출물은 위장 개선에 쓰이고, 혈당 조절을 돕는 성분은 건강식품으로 상품화된다. 그렇게 구아바는 과일에서 약이 되고, 향에서 치유가 된다. 나는 그것이 놀랍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가 구아바 안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서. 어떤 이들은 구아바를 삶 속의 장식으로 쓴다. 꽃과 함께 테이블에 놓고, 접시의 곁에 올리며, 요리의 색을 보완한다. 어떤 이는 그것을 그린다. 분홍빛 단면을 수채화 물감으로 옮기며, 과일 하나에 깃든 시간과 감정을 기록한다. 어떤 이는 그것을 시로 쓰기도 한다. 그렇게 구아바는 식탁에서, 약장 속에서, 기억 속에서, 그리고 언어와 색채 속에서도 살아간다. 너무 많은 이름과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어느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구아바를 한 번 먹고 나서, 그날 하루 종일 잔향 속에 머물렀다. 그것은 혀끝이 아니라 마음속에 남는 맛이었다. 누군가에게 받은 부드러운 위로처럼, 말없이 곁에 앉아 있는 존재처럼. 구아바는 그렇게 나를 감싸고 있었다. 분홍빛으로, 조용한 기운으로.